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의 한국어판 출간을 두 달 앞둔 2014년 5월 27~30일, 케임브리지에서 장하준으로부터 직접 신간에 대해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었다. 그중 일부를 소개한다.
경제학은 정치다
책에서 "경제학은 정치다.(Economics is politics!)"라고 하셨는데요.
경제는 정치이고 경제는 정치와 분리될 수 없다는 게 제 중요한 주장 중 하나입니다.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경제학자들 자체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애덤 스미스나 리카도가 경제학을 쓸 때는 '경제학'이 아니라 '정치경제학'이었습니다. 그때는 정치와 경제의 분리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거죠. 20세기 들어 신고전주의학파가 득세하면서 이를 '경제학'으로 이름을 바꾸고, 경제학은 과학이니까 정치 논리나 도덕적 윤리 기준은 빼고 이야기해야 한다는 식으로 경제학을 탈정치화된 학문으로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요즘 좌우를 막론하고 '정치 논리가 경제에 개입하면 안 된다.'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요. 저는 정말 틀린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경제가 뭔지를 규정하는 것 자체가 정치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19세기에는 노예를 사고 팔아도 되고 아동 노동도 허용됐고 공해 물질을 배출해도 됐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잖아요. 그때는 노에와 아동 노동도 경제에 포함했지만 지금은 최소한 선진국에서는 누가 노동 시장 유연화를 위해 아동 노동을 도입해야 한다는 얘기 합니까? 경제 자체가 완전히 바뀌었거든요. 아동 노동이 있으면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니 바뀐 것이 나이라, 결국은 아동 노동이 옳지 않다고 사람들이 받아들였기 대문에 정치적으로 금지한 것입니다. 경제 자체가 정치에 의해 결정되는데 어떻게 경제에 정치 논리를 개입하지 말라고 얘기하죠? 그런 분들이 하는 이야기의 본질은 '내 정치 논리는 경제니까 건드리지 말고 네 정치 논리는 (내가 보기에)정치니까 개입하지 마라.' 이런 얘기입니다. 굉장히 잘못된 생각이죠.
그렇다고 모든 것을 정치적으로 결정하자는 얘기는 아닙니다. 할 수도 없고요. 많은 부분은 기숙적인 결정으로 받아들여야죠.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그런 부분도 바뀔 수 있다는 거예요. 경제도 정치라는 것을 이해하면 경제 현상이 지질이나 해일처럼 불가피한 현상이 아니라는 걸 이해하게 됩니다.
요즘 세계적으로 정치 혐오가 유행입니다. 우리나라만 그런 줄 알았더니 유럽에서도 정치 무대에서 비정치인 출신이 인기를 끄는 경우가 많더군요. 그런데 경제학에서도 정치 혐오를 부추기는 게 있지 않습니까?"
정치 혐오라는 게 현재 주류 경제학인 신고전주의 경제학에서는 아예 DNA에 있는 거예요. '어떻게 하면 경제에서 정치를 빼낼까' 하는 것이 신고전주의 경제학의 관심사 중 하나입니다. 물론 신고전주의 학자들이라고 모두 정치 혐오를 부추기는 건 아니지만, 정치 혐오가 되기에 굉장히 좋은 체질을 갖고 있는 경제학이죠. 소득 재분배 문제를 자원 배분 효율성 문제에서 떼 내려는 시도를 많이 하고, 당연히 이론도 그런 쪽으로 발달했고요. 경제학을 과학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니 경제에서 정치를 떼 내고 싶어 하죠. 정치라는 것이 들어오면, 결론이 나지 않고 '의견 차이'라는 식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신고전주의학파 경제학자들은 최근에 '정치는 나쁜 것이다.'라는 이론을 많이 개발했습니다. 신고전주의학파가 예전에는 정부 개입을 옹호하는 이론도 많이 발달시켰죠. '후생경제학'이라고 해서 1920~1930년대에 시장 실패론을 개발했습니다. 시장에 그냥 맡긴 채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게 만들면 그 결과가 사회적으로는 더 안 좋을 수도 있다는 얘깁니다. 규제 없이 생산하라고 하면 기업이 공해 물질을 너무 많이 배출하는 것처럼, 시장이 사회적인 이익을 담보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국가가 개입할 수 있고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 시장 실패론입니다.
그런데 1970~1980년대에는 시장 실패론의 반대로 정부 실패론을 개발했죠. 신고전주의학파 경제학자들 중에 정부 개입을 싫어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크게 보면 같은 학파임에도 시장 실패론과 척을 지는 정부 실패론을 만든 거예요. 정부 실패론은 정부의 정책이라는 게 (옛날 플라톤이 이야기한 '철인'이 아니라) 모두 자신의 사익을 추구하는 정치인과 관료, 그들에게 로비하는 이익 집단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므로 그런 사람들이 제대로 하곗느냐는 것이죠. 시장이 실패하더라도 그 비용을 감수하는 것이 낫다는 주장이에요. 정부더러 개입해서 고치라고 하면, 고치기는커녕 더 나쁘게 만들 수 있다는 거죠. 그 이론이 지난 30여 년 동안 소위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을 굉장히 많이 지원 사격한 겁니다.
지금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니 정부가 개입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문제 제기가 있을 때마다, '경제에 정치 논리가 개입하면 더 나빠진다' '시장이 완벽한 건 아니지만 정부 실패보다 시장 실패가 나으니 그냥 놔 둬라.'라며 정치 혐오를 더 키운 거죠. 이론 자체가 공익이라는 개념이 없다는 거잖아요. 정치인도 관료도 자신의 사익을 위해 정치에 뛰어들고 공직에 나선다는 거니까요. 그런 이론을 따르다 보면 '맞아, 다 나쁜 사람들인데 어떻게 믿고 맡겨?' 이렇게 되는 거죠.
일견 맞는 말이지 않습니까. 나쁜 사람들 많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항상 제일 위험한 것이 '일견 타당성이 있는 이론'입니다. 딱 짚어서 '나쁜 정치인이 있잖아.' 하고 보여 주면 '맞아, 정치 나빠.'라고 하기 좋거든요. 정치 혐오라는 게 어느 정도까지 진행됐느냐면요. 제일 심각한 게 아마 미국일 텐데요. 제가 한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부시와 고어가 대선에서 맞대결할 때인데, 『파이낸셜 타임스』에서 여론 조사를 했어요. '누구를 지지하냐', '왜 지지하냐' 뭐 이런 일반적인 질문도 있었지만, 특이하게 '싫어하는 후보는 왜 싫어하느냐'라고 물어본 거예요. 부시 지지자, 고어 지지자 할 것 없이, 제일 많은 응답은 '너무 정치적이다'라는 거였어요. 아니, 그런데 정치인들이 정치적이어야지, 정치적이지 않으면 더 큰일 나는 거잖아요. 그런데도 그런 대답을 할 정도로 정치라는 것이 ㄴ나쁜 말이 돼 버렸습니다. 이런 정치 혐오가 어떤 결과를 만드느냐면, 민주주의가 무력화되는 거죠. 국민이 정치를 싫어하기 시작하면, 우리나라뿐 아니라 비정치인이 비정치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지지를 얻는 경우가 많잖아요. 파키스탄에도 크리켓 선수 출신인 임란 칸(Imran Khan)이라는 사람이 중요한 정치인이에요. 이탈리아에서도 몇 년 전 선거에서 코미디언이 이끄는 정당이 주요 정당으로 부상했잖아요. 그 사람들이 인기를 끈 가장 큰 이유가 그들이 정치인이 아니라는 거였어요. 정치를 혐오하다 보면 결국 나오는 결과가 '정치적으로 경제에 개입해 봤자 안 된다, 더 나쁘다'라는 거예요. 이런 식으로 믿게 되면 모든 걸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죠.
이 정치 혐오 뒤에는 기득권층의 의도가 있다고 보시는 거죠.
그렇죠. 시장이라는 건 '1원 1표' 아닙니까. 돈을 가진 만큼 영향력을 갖는 거죠. 시장을 통해서는 돈이 없는 일반 국민이 중요한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가 없어요. 물론 시장이 중요하고 사회에 공헌하는 부분이 있지만, 시장에만 맡겨 놓으면 균형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없으니 도입한 게 민주주의잖아요. 1원 1표의 시장 논리를 1인 1표의 정치 논리로 제약해서, 가령 '수돗물이나 우편 서비스 등 누구나 받아야 하는 공공 서비스는 시장에 맡겨 두지 말고 정치 논리로 결정하자', '어느 선까지 시장이 작용하는 어느 선부터는 정치가 개입해야 하는지를 정치 논리로 결정하자'라는 거거든요. 그것이 민주주의이고 그래서 도입한 거잖아요.
최근 한국에서 관피아 문제가 대두되고 있습니다. 관료들이 퇴직 후 다시 업체의 뒷배를 봐주는 등 이런 식으로 '관료 출신들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 그러니 물, 교통… 이런 공공재를 시장으로 가져가야 한다.' 이런 논리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아르헨티나에 이런 속담이 있어요. "탱고를 추려면 두 명이 필요하다." 정부 관료의 부패는 민간 부문의 파트너가 있어서 부패하는 겁니다. 부패의 소지가 생긴다고 규제를 없앤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거예요. 우리 속담에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랴.'라는 게 있잖아요. 어떻게 하면 정부 관료의 부패를 줄이고 규제의 투명성을 높여 부패를 없앨 것인가를 고민해야지, 구더기가 생기니 장을 담그지 말자는 건 말이 안 됩니다.
'공공재가 시장으로 들어가면 그때부터는 1원 1표다. 그러니 1인 1표가 되도록 해야 한다?'
모든 것을 1인 1표의 논리로 결정하려면 시간도 많이 들고 경우에 따라서는 안 좋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의 대강은 1인 1표의 민주주의 원칙에 의해 정해야 하는 거죠. '먹는 물 사업을 민영화할 것인가?' 이 문제는 민주주의가 정해야 하는 것이죠. 물, 의료 등 공공성이 높은 것을 민영화하면 다 해결될 것처럼 얘기하는데요.
첫째, 소위 말하는 신고전주의학파에도 왜 그런 공공재를 민영화하면 안 되는지 근거를 제시하는 이론들이 많습니다. 소위 공공성이 높은 물건이니 서비스는 국영으로 운영하거나 최소한 정부의 규제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론은 신고전주의학파에도 많아요. 그런 얘기를 빼놓는다는 건 신고전주의 경제학도 제대로 모르는 거죠.
둘재, 민영화한다고 효율성이 실제로 올라가지는 않습니다. 미국 의료를 에로 들어 볼까요. 완전 민영화돼 있잖아요. 미국 GDP의 17퍼센트가 의료비에요. 선진국 중 국민소득 대비 의료비 지출이 가장 높습니다. 그런데도 건강 지표는 선진국 중 하위권입니다. 다른 나라보다 의료비를 50퍼센트, 100퍼센트 더 쓰는데도요. 영국이나 스웨덴의 경우, 의료비 지출이 국민소득의 10퍼센트, 11퍼센트밖에 안 되거든요. 그런데 건강 지표는 미국보다 좋단 말이죠.
이처럼 신고전주의학파 이론 중에서도 일부만 가져와서 민영화하고 규제 완화하면 다 될 것처럼 말하는 건 하다못해 신고전주의 경제학 이론도 제대로 모르고 말하는 것이고, 실제 이것이 적용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는 겁니다.
그럼에도 미국만 해도 신고전주의학파 이론대로 변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 배후에는 가치 판단을 배제한 과학적 분석이나 이론이 있기보다는 기득권이 있는 거죠?
모든 경제학이 기득권만 옹호하는 건 아니겠죠. 경제학파에 따라서 다르고, 특히 마르크스 경제학 같은 경우는 노동자의 이익을 옹호한다고 노골적으로 말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신고전주의 경제학처럼 자기네들은 정치색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건 제일 위험한 거예요. 사실은 숨어 있는 정치색과 어젠다가 있거든요. 마르크스처럼 '우리는 노동자 편이다', 리카도처럼 '나는 자본가 편이다' 이야기하면 도니ㅡㄴ데, 신고전주의 경제학은 그게 아니예요. 자기들 이론은 과학적인 거라고 얘기하면서 실제로는 누구 편을 드니까 더 문제인 거죠.
민영화 관련해서 경제학적 논리를 주장할 때는 학문에 입각한 것이라기보다는 일정하게 정치적이라고 볼 수 있겠군요.
그렇죠. 정치적인 의견이죠. 경제학은 정치적 논쟁이에요. 하다못해 우리가 객관적인 지표라고 여기는 GDP만 해도 그 아래에는 이론이 다 깔려 있고 그 이론의 정치적 입장이 있는 거예요. 한번 볼까요. 여성의 가사 노동은 GDP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하기 어려워서 그런 거 아니에요. GDP 추산할 때 별걸 다 추산하거든요.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자기 소유의 주택에 살 경우 그 사람이 남의 집에 임대로 살 때 내야 하는 비용까지 추산해서 GDP에 반영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마치 자기 집에 사는 사람은 공짜로 사는 것처럼 돼 버리니까요. 그런데 가사 노동은 반영 안 해요. 굉장히 정치적인 결정이죠. GDP뿐 아니라 모든 숫자에 이론과 가정이 깔려 있고 그 이론적 가정에 정치적 입장이 있는 겁니다. 정치적 입장이 있다는 건 누군가의 이익을 반영하는 것이고요. 정치적인 것을 배제한 경제 정책이나 경제 이론은 있을 수 없는 거죠.

"답은 정해져 있어.
너희는 듣기만 해."라는 경제학자
책에서 많은 경제학파를 말씀하셨어요.
9개 주요 학파를 얘기했습니다. 고전주의학파, 신고전주의학파, 케인스학파, 마르크스학파, 슘페터학파, 개발주의 전통, 행동주의학파, 제도학파, 오스트리아학파예요. 작은 학파까지 하면 훨씬 더 많죠. 경제학을 '경제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규정하면 학파가 그렇게 많습니다.
경제학을 신고전주의학파적으로 '합리적 선택 이론을 써서 인간 행동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규정하니 경제학파는 딱 하나만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거예요. 이는 카톨릭만 기독교라고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것과 같아요. 같은 기독교 내에서도 카톨릭, 정교, 개신교 등 주요 분파가 3개 있잖아요. 경제학도 그렇습니다. 시장주의 경제학도 3학파가 있어요. 고전주의학파와 신고전주의학파, 오스트리아학파가 다 시장주의 학파인데 그 이론이 다르단 말입니다. 신고전주의학파라고 모두 시장주의도 아니고요.
그 많은 경제학파 중에 진리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진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학파가 배울 점이 있고 잘못된 점이 있으니까요. 특히 신고전주의학파와 마르크스학파가 제일 심해요. 그들은 정말로 자기들만 맞고, 다른 학파는 틀렸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다른 학파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 많죠. 케인스학파도 앞의 두 학파 정도는 아니지만 자기들만 진리라고 생각하는 사람 많죠. 그래서 그게 아니라고 이 책 여러 군데에서 강조했어요.
예를 들어 싱가포르 하면 '자유 무역 하고 외국인 투자 환영해서 성공했다더라.' '우리도 싱가포르처럼 돼야 한다.'라고 시장주의자들이 많이 얘기하는데요. 싱가포르 토지의 90퍼센트 이상이 국가 소유입니다. 주택의 85퍼센트를 국영 주택 공사에서 공급하고, 국민총생산의 22퍼센트를 국영 기업에서 생산해요. 우리나라가 옛날에 민영화하기 전에도 기껏해야 10퍼센트였거든요. 세계 평균이 8~9퍼센트 정도 될 겁니다. 통계 내리기가 어려운 것이라 세계 평균은 얘기하기 힘들지만요. 싱가포르는 한편으로 보면 제일 자본주의적인 나라인데 다른 한편으로는 제일 사회주의적이란 말이죠. 그럼 어느 이론이 싱가포르를 다 통합해서 설명할 수 있겠어요. 하나의 이론을 가지고 그 이론이 등한시하는 이슈를 이해하려면 틀 자체가 빈약해서 이해가 불가능한 거예요. 다른 학파도 마찬가지죠. 여러 이론을 알고 융합해야 복잡한 경제 현상을 설명할 수 있어요. 이게 진리고 저건 틀렸다 해선 안 되죠.
소위 방법론적인 다원주의를 이야기하는 사람 중에도 그런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생각해도 내가 맞는데, 그래도 평화 공존 해야 하니 너는 네 거 하고 나는 내 거 하자.' 이런 사람도 있어요. 저는 그것도 틀렸다고 생각해요. 진짜로 마음을 여는 태도를 가져야 해요. 모든 학파가 할 말이 있고, 이슈에 따라 할 말이 많은 학파가 있고 적은 학파가 있고, 특정 나라에 더 잘 맞는 이론이 있고 그렇지 않은 이론이 있고, 우리의 도덕적, 정치적 가치관에 따라 이 이론이 맞을 수도 있고 저 이론이 맞을 수도 있다…. 이런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중요한 주장 중 하나예요. 대부분의 경제학자들 사이에선 굉장히 인기가 없는 주장이겠죠.
그렇다면 일반 시민들이 경제학 이론을 해석할 때는 어떤 경제학 이론이 옳은가가 아니라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를 봐야겠군요.
그렇죠. 경제학 이론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이야 누가 더 맞는가로 싸우는 게 필요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그럴 필요까진 없거든요. 비유하자면, 자동차를 몰고 다닌다고 자동차 정비나 제작 공정까지 배워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어떻게 해서 이 경제학 지식을 가지고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우리가 당면한 경제 문제를 더 잘 이해하고 더 좋은 사회를 만들 것인가를 알면 되는 거예요.
경제학을 잘 이용하라는 말씀이죠.
네. 그래서 이 책 부제 자체를 '사용자 설명서(The User's Guide)'라고 붙인 거예요. 경제학이라는 것이 유용할 수 있는 학문인데 자꾸 경제학자들이 '진리는 우리 독점이야. 너희는 우리 말만 들으면 돼'이런 식으로 하니, 사람들이 점점 더 경제학에서 멀어지는 거죠. 그래서 그걸 고쳐 보려는 겁니다. 사람들이 다른 분야에는 관심이 엄청 많잖아요. 그런데 시시콜콜 다 알아서 관심 갖는 게 아니거든요. 저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침공한 건 잘못이라고 말하지만 국제정치학을 공부해 본 적은 없어요. 30년 전에 교양 과목으로 한 번 들은 게 다예요. 그래도 의견이라는 게 있단 말입니다. 그런데 왜 경제학에 있어서는 보통 사람들이 그런 의견을 가질 수 없냐는 말이에요.
일반적으로 경제학자들은 '우리는 논리적으로든 실험으로든 뭔가를 증명할 수 있고 무엇이 진리인지 알 수 있기 때문에 경제학은 과학이다.'라고 생각합니다.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유행했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에도 그런 태도가 있어요. 자기들은 진실을 안다는 거죠. 이는 신고전주의학파와도 통하는 면이에요. 진실은 하나뿐이고 지금 당장은 100퍼센트 몰라도 열심히 연구하면 알 수 있다는 생각이에요.
'우리만 맞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현재 주류 경제학인 신고전주의학파 경제학이 갖고 있는 태도의 큰 문제 중 하나입니다. 어느 정도까지인가 하면요. 신고전주의학파는, 뭐랄까 사악한 가정이 많잖아요. 예를 들어, 인간은 자기 이익만 추구한다고도 하고요. 사람들이 남을 생각하고 봉사하는 것도 다 자신을 위한 것이며 그래서 위선이라고 하죠. 즉 자기들은 위선이 아니라 진실을 그대로 까발려 준다는 태도예요.
물론 그런 면이 없는 건 아닙니다. 문제는 그런 면만으로 세상이 돌아가지는 않는다는 거예요. 그런데 젊은 학생들은 그런 어두운 면에 노출되면 현혹된단 말이죠. 그런 식으로 한번 추종하기 시작하면 '인간은 다 그렇고, 세상은 다 정글이고'이런 식으로 생각하면서 이 논리만 맞는 것이라고 빠져드는 거죠.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특별 부록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