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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주는 타고난 것인가?     


                                                                                             글쓰기 능력이라는 건, 그러니까 말을 다루는 솜씨라는 건 타고나는 것일까요, 아니면 훈련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일까요? 만약에 전적으로 타고나는 것이라면, 여러분이 이 자리에 계실 필요가 없습니다.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불행하게도, 제 생각에 모든 뛰어남이라는 건 압도적으로 타고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분야에 따라서 타고남의 정도는 큰 차이가 있는 게 확실합니다.
  음악이나 수학 같은 분야는 재능을 타고나지 않으면 일정 수준 이상의 능력을 갖추는 게 불가능합니다. 절대음감을 타고나지 않으면, 아무리 듣고 또 들어봐야 그 소리가 그 소리일 겁니다. 저도 도레미파솔라시도를 구분 못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대화를 하면서도 '아, 저건 지금 시네, 파네' 이렇게 알아들을 수 있는 능력이 있지 않습니까? 이런 사람들, 이런 타고난 천재라는 게 분명히 있습니다. 수학적 추상능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수학사의 천재들을 보면 대개 열 살 이전부터 그 재능이 드러납니다.
  흔히 가장 위대한 수학자라고 불리는 가우스(Carl Friedrich Gauss, 1777~1855)의 유명한 예를 들어봅시다. 가우스가 초등학교에 들어가 얼마 뒤, 선생님이 산수 시간에 어린이들에게 1에서 100까지 다 합하면 얼마가 되는지 계산해보라고 했답니다. 선생님은 당연히 시간이 한참 걸릴 줄 알았는데, 가우스란 어린이가 "5,050이요"라고 즉석에서 말해버린 겁니다. 선생님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이 아이가 원래 답을 알고 있었나, 하는 의심도 들었을 겁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꼬마 가우스에게 5,050인 줄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가우스가 대답했습니다. "첫 수인 1이랑 마지막 수인 100을 더하면 101이고, 두 번째 수인 2와 마지막에서 두 번째 수인 99를 더해도 101이고, 세 번째 수인 3이랑 마지막에서 세 번째 수인 98을 더해도 101…그래서 101 X 50 하니까 5,050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는 일화죠?(웃음) 우리가 이 일화를 알고 있으니까 그리 놀랍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꼬마 가우스는 이 수리능력을 어디서 배운 게 아니라 타고난 것입니다. 문제가 제시된 순간, 수학적 추상능력이 곧바로 발동해버린 겁니다.
  수학은 결국 천재들의 학문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천재들이 수학의 역사에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그 가운데 에바리스트 갈루아(évariste Galois, 1811~1832)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프랑스 사람인데 이 사람은 대학시험에 계속 떨어졌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수학자가 되려면 보통 파리이공학교라는 나폴레옹이 세운 특수학교에 갑니다. 파리이공학교도, 프랑스말로는 에콜 폴리테크니크라고 하는데, 그랑드제콜 가운데 하나입니다. 갈루아는 이 학교에 두 번 시험을 쳤는데 두 번 다 떨어집니다. 왜 떨어졌냐면, 채점관들이 에바리스트 갈루아의 답안지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항상 수험생들은 시험관보다 덜 똑똑해야 합니다. 수험생들이 시험관보다 똑똑하면 인생 완전히 망가지는 겁니다.(웃음) 이 친구는 그래서 결국 대학엘 못 가고 혼자서 수학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스물두 살엔가 어떤 여자를 사이에 두고 어떤 사내와 결투를 벌였다가 총에 맞아서 죽습니다. 갈루아는 견결한 공화주의적 신념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요즘 한국말로 하면 운동권이었지요. 그래서 이 결투가 경찰에서 갈루아를 제거하기 위한 공작의 일환으로 이뤄졌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갈루아는 결국 정치에 휩쓸려 죽은 셈입니다.
  그런데 이 친구가 결투에 나서기 전날 밤새워 대단한 논문을 씁니다. 수학사의 한 획을 그은 논문입니다. 저는 수학을 잘 모르는데 '군群 이론'이라는 게 있다고 합니다. 갈루아가 죽기 전에 쓴 논문이 이 이론의 토대가 됐습니다. 갈루아는 방정식이론에도 아주 큰 기여를 했습니다. 5차 이상의 방정식은 대수적 방법으로 풀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 했습니다. 사실 갈루아가 너무 일찍 죽었기 때문에, 그가 쓴 논문전집이라고 해봐야 몇 페이지 되지도 않습니다. 그래도 갈루아는 수학사에서 불멸의 이름이 됐습니다. 음악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차르트도 일찍 죽었지만, 설령 더 일찍 죽었다고 해도 음악사에서 불멸의 이름이 됐을 겁니다.
  특히 수학사를 보면 일찍 죽은 사람들이 적지 않고, 또 오래 살았다고 해도 중요한 업적을 10대, 20대 때 다 끝내버립니다. 나머지 인생은 대충대충 놀며 가르치며 사는 겁니다. 심지어 물리학도 그렇습니다. 아인슈타인 같은 사람도 자신의 중요한 업적을 20대, 30대 때 다 이뤘습니다. 그 이후엔 그저 명성으로 살았습니다.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것(1921년)도 상대성이론으로 받은 게 아닙니다. 한참 전에 발표한(1905년) 광전효과에 관한 노문으로 받은 것입니다. 광전효과라는 건, 금속에 빛을 쪼이면 전자가 튀어나오는 현상을 말합니다. 그전까지 알려진 빛의 이론, 즉 빛의 파동론으로는 이 현상을 설명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빛은 파동이면서 입자라는 대담한 가설을 내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건 중학생들도 아는 물리학 상식이 됐습니다. 그러니까 아인슈타인이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건 상대성이론이랑 아무 상관도 없습니다. 상대성이론이든 광양자이론이든 아인슈타인이 다 젊어서 세운 이론입니다. 아인슈타인이 중년 이후에 세운 업적이라는 건 거의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입니다.
  물론 예외적인 사람들도 있습니다. 나이 들어서까지 새로운 이론을 세운 수학자들이나 뛰어난 곡을 만든 음악가들이 있긴 합니다. 아까 예로 든 가우스 같은 이가 그랬습니다. 거의 아흔이 다 되도록 살았는데, 일생 동안 슬럼프 없이 업적을 남겼습니다.

글은 재능이 아닌            

훈련에 달렸다!              



                                                                                            그렇다면 글쓰기의 경우엔 어떨까요? 제가 처음 말씀드렸듯, 모든 뛰어남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타고나는 겁니다. 그렇지만 글쓰기는 수학이나 음악과는 다릅니다. 음악이나 수학은 재능을 타고나지 않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다다를 수 없는 한계가 있습니다. 글쓰기는 다릅니다. 물론 글쓰기 능력이라는 것도 저는 어느 정도 타고난다고 생각합니다. 말에 대한 감각, 말을 다룰 줄 아는 능력 같은 게 어느 정도는 타고난다고 생각하는데, 음악이나 수학과 달리 이건 충분한 훈련이나 연습으로 크게 개선할 수 있습니다.
  글쓰기 중에서도 시는 음악이나 수학처럼 타고난 재능에 많이 의존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랭보라는 시인 아실 겁니다. 이 양반은 10대 말부터 20대 초까지 시를 다 쓰고 나머지 인생은 세상을 돌아다니며 산 사람입니다. 그래도 문학사에서 불멸의 이름이 됐습니다. 꼭 랭보가 아니더라도, 시인들의 경우엔 첫 시집이 가장 뛰어난 시집이 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젊은 시절에 재능이 발휘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산문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제 글에 큰 영향을 준 분 가운데 김현이란 분이 계십니다. 지난 세기 90년에 마흔여덟 살 나이로 돌아가신 분입니다. 불문학자고 문학평론가셨는데 이분이 젊었을 때, 20대에 쓴 글을 지금 읽어보면 너무 어설픕니다. 어떻게 김현이 이런 글을 썼을까 싶습니다. 일찍 평론가로 데뷔해서 일찍부터 글을 쓰신 분인데, 데뷔 직후에 쓴 글들을 보면 읽기가 짜증날 정도입니다. 세상에 어떻게 글을 못 써도 이렇게 못 쓸 수가 있을까, 이렇게 쓰려고 해도 어렵겠다 싶은데, 이분의 만년 글들을 보면 정말 좋습니다. 한국어 산문의 한 정점에 있다 싶을 정도입니다. 김현 선생이 마지막으로 낸 책이 《말들의 풍경》이라는 평론집입니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을 김현 선생 초기 글들과 비교해보면, 과연 같은 사람이 쓴 글이 맞나 싶을 정도입니다. 한 20년 세월이 흘렀다지만,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다릅니다.
  이건 김현 선생님 경우만이 아니라 많은 분들이 그런 것 같습니다. 20대에 어설픈 글들을 쓴 이들이 훈련을 통해서나 경험을 통해서 완전히 다른 글들을 쓸 수 있는 것 같다는 뜻입니다. 수학자들이나 음악가들이 어렸을 때 또는 젊었을 때보다 더 뛰어난 이론을 만들었다거나 더 뛰어난 작품을 만들었다거나 하는 일은 굉장히 드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글 쓰는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글이 나아집니다. 특히 산문가들의 경우에 그렇습니다. 소설이나 에세이를 쓰는 사람들의 경우 말입니다. 그렇다는 건 글쓰기가 재능에 달린 게 아니라 많은 부분이, 압도적 부분이 훈련에 달려 있다는 걸 뜻하는 것입니다. 재능도 필요하지만, 노력이 훨씬 더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지금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음악이나 수학을 배우려면, 굳이 여기 있을 필요가 없겠지요? 그건 일정 정도 이상은 배울 수가 없는 거니까요. 제가 설령 수학의 천재라고 하더라도 여러분들한테 줄 수 있는 건 거의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글쓰기는 다릅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글쓰기 연습을 하는 겁니다.
  제 경험 얘기를 하자면, 전 초등학교 때부터 글 잘 써서 상을 타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다른 상도 마찬가지지만요. 초등학교 때 글짓기 시간도 있고 글짓기대회도 많이 하잖아요? 제 글이 교실 뒤에 걸려 있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글쓰기 능력을 타고나지 못한 겁니다. 그래서 글쓰기를 싫어했습니다. 성장기 내내 그랬고, 대학 들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리포트 내는 게 정말 끔찍했습니다. 그러다가 신문기자가 됐는데 처음 들어간 신문사가 우연히 영자 신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영어로 글쓰기를 시작했고, 5년 정도 있다가 한국어 신문으로 와서 한국어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대학 졸업할 때까지 글 쓰는 데 너무 무능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막상 직업적 글쟁이가 돼 거의 매일 글을 쓰다 보니, 글이 점점 나아지고 글쓰기가 그렇게 어렵지 않았습니다. 저 자신도 놀랄 정도였습니다. 그 말은, 글쓰기 능력이라는 건 타고남의 부분이 굉장히 적은 것이다, 압도적으로 노력과 훈련의 결과다, 그런 뜻입니다.


/고종석의 문장에서 발췌


Posted by 세이브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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