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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적 올바름에 대하여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30년 안쪽에 생긴 표현입니다. 예컨대 미국에서는 '검둥이(Negro, nigger)'라는 말은 물론이고 '흑인(black)'이라는 말도 그 뉘앙스가 좋지 않아서 점잖은 자리에선 '아프리카계 미국인(African American)'이라는 말을 씁니다.


  한국에서도 정치적 올바름이 실천되고 있습니다. 영어의 영향을 받은 거지요. 예전에 '식모'라고 불렀던 사람들을 '가정부'라고 부르다가 요즘은 '가사도우미'라고 합니다. '보험외판원'은 생활설계사'로 부르고, '차장'은 '안내원'으로 부르고, '광부'는 '광원'으로 부르고, '청소부'는 환경미화원'으로 부르고, '정신지체아'는 '학습곤란자'라고 부릅니다. 이런 식으로 부정적 이미지를 지니고 있던 말을 버리고 중립적 또는 긍정적 뉘앙스를 담은 말을 쓰는 것을 정치적 올바름이라고 합니다.



정치적 올바름은

위선일 뿐일까?                                                         정치적 올바름의 효과는 극히 제한적입니다. 새 단어를 만든다고 하더라도 예전에 쓰던 단어의 이미지가 새 단어에 금방 달라붙습니다. 몇 년만 지나면 똑같아집니다. '형무소'를 '교도소'라고 부른다고 해서 '교도소'의 이미지가 크게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오히려 좌파들은 그런 정치적 올바름을 위선이라고 비판합니다. 사회적으로 불리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의 실제 환경을 개선해야지, 말하자면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문화적으로 열악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의 환경을 개선해야지, 이름만 바꿔 부르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름만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예를 갖춰서 부르면 이건 속임수라는 겁니다.

  이 견해는 옳을 수도 있고 그를 수도 있습니다. 이름만 바꿔 부르는 게 큰 의미가 없는 건 사실이지만, 정치적 올바름을 실천하는 건 말이나 글에 기품을 부여합니다. 그래서 저는 글을 쓸 때 원칙적으로 정치적 올바름을 실천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적 올바름의 추구가

글의 결을 해쳐선 안 된다                                              '외국인 노동자'를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부르려면 '이주 노동자'라고 해야 합니다. 외국인 노동자라는 말에는 어떤 편견이 담겨 있습니다. 물론 글에서라고 늘 정치적 올바름을 실천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컨대 '여공'이라는 말을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부르면 '여성 노동자'가 도비니다. 그런데 1970년대를 회상하는 글이 있다고 칩시다. 그 시절에는 '여성 노동자'라는 말이 존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글에서 '구로공단의 여성 노동자들'이라고 쓰는 것은 좀 어색할 것 같습니다. '구로공단의 여공들'이라고 하는 것이 더 실감날 것입니다. 그러니까 글을 쓸 때 정치적 올바름을 실천하는 건 중요하지만, 정치적 올바름을 실천하기 위해서 글의 결을 해쳐서는 안 됩니다.




/고종석의 문장에서 발췌

Posted by 세이브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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