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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과 언어의             

경계                        


   언어와 방언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무슨 말이냐 하면, 어떤 때에 우리가 그것을 독립된 언어로 부르고 어떤 때에 우리가 그것을 방언이라고 부를까요?


   예컨대 충청도에서 사용하는 말은 그냥 한국어의 방언이라고 생각 합니다, 당연히. 그렇지만 일본어를 한국어의 방언이라고 생각하진 않죠? 중국어도, 보통화(표준어)든 광둥어든 한국어의 방언이 아닙니다. 그러면 방언과 방언이 아닌 독립된 언어의 경계는 무엇일까요? 무엇이 방언과 언어의 사이를 가를까요?


 수강생1                     국경이요.


  국경? 좋은 지적입니다. 그렇지만 벨기에의 경우, 남쪽에서는 프랑스어를 쓰고 북쪽에서는 네덜란드어를 쓰고 또 한쪽 귀퉁이에는 독일어를 쓰는 지역도 있습니다. 물론 벨기에에서 쓰는 네덜란드어와 네덜란드에서 쓰는 네덜란드어가 아주 똑같지는 않습니다. 또 벨기에에서 쓰는 프랑스어와 프랑스에서 쓰는 프랑스어가 아주 똑같지도 않습니다. 그렇지만 벨기에 남부에서 쓰는 언어는 엄연히 프랑스어고, 북부에서 쓰는 언어는 엄연히 네덜란드어입니다. 그러니까 국경이라는 건 언어와 아무 상관 없습니다.
  영국에서 쓰는 언어와 미국에서 쓰는 언어를 우리는 같은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언어의 방언일 뿐이죠. 그럼 뭘까요? 언어와 방언의 차이는?
  민족? 그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같은 민족이라 할지라도 예컨대 어떤 민족이, 옛날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를 시킨 한민족이 많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지금 러시아어나 그 지역 소수언어를 씁니다, 그분들 주변 사람들처럼. 그렇다고 해서 이주 한민족, 고려인이라고 부릅니다만, 고려인이 쓰는 러시아어라고 해서 러시아어가 아닌 것은 아니죠? 또다른 분?


 수강생2                     문자체계나 문법이요.


  문자체계? 이건 아무 상관이 없어요. 세르비아에서 쓰는 세르비아어는 로마문자로 쓰기도 하고 키릴문자로도 씁니다. 키릴문자라는 문자가 있어요. 러시아를 비롯해서 몽골과 동유럽 몇 나라에서 씁니다. 그러니까 똑같은 언어를 로마문자로 쓰기도 하고 키릴문자로 쓰기도 해요. 더구나 로마문자는 중서부 유럽어들만이 아니라, 터키어, 베트남어, 말레이인도네시아어를 표기하는 데 사용됩니다. 문법이라? 이탈리아어와 포르투갈어의 문법은 거의 비슷한데, 그 두 언어가 같은 언어는 아닙니다. 또 한국어 문법과 일본어 문법은 굉장히 닮은 거 같은데요? 제 생각에. 저는 일본어를 잘 모릅니다. 사실 거의 모르는데 일본어를 흘끗 들여다보면 한국어와 문법이 거의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한국어와 일본어는 다른 언어죠.


 수강생3                     따로 학습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이요.


  정답에 거의 근접한 대답이 나왔습니다. 따로 학습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는 거라면 다른 언어가 아니라 방언이지요? 조금만 더 나아가봅시다. 다른 분?


 수강생4                     그 의미가 통하는 언어요.


  그렇습니다. 의사소통 가능성입니다. 어떤 두 화자가 자기만의 언어로 얘기할 때 의사가 소통되면, 그 사람들은 한 언어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즉 억양이나 단어 형태가 조금씩 다르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들의 언어는 한 언어의 방언일 뿐이지 다른 언어가 아닙니다. 그런데 어떤 두 사람이 만나서 자기들 언어로 얘기를 하는데 의사가 소통되지 않는다, 그러면 그 사람들은 서로 다른 언어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언어와 방언을 구분 짓는 것은 의사소통 가능성입니다.


 수강생5                     북유럽 같은 데서 노르웨이어나
                                스웨덴어 같은 경우,
                                다른 나라 말이라고는 하지만
                                의사소통이 된다고 하던데요.


  아주 좋은 지적입니다. 언어와 방언을 가르는 기준을 의사소통 가능성이라고 할 때 그 기준은 순전히 언어학적 기준입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순수하게 학술적으로만, 이론적으로만 되는 일은 없습니다. 모든 일에는 정치가 개입합니다. 정치, 이게 항상 문제입니다. 말씀하셨듯이 북유럽엔 노르웨이가 있고 스웨덴이 있고 핀란드가 있고 덴마크가 있습니다. 그런데 핀란드어는 다른 유럽어와 전혀 상관없는 언어입니다. 핀란드어만이 아니라 헝가리어, 리투아니아어 같은 언어들은 주변 국가들 언어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질적 언어예요. 차라리 언어 유형으로 보면 우리말에 더 가까운, 한국어에 더 가까운 그런 언어들입니다. 그러니까 핀란드는 제쳐놓고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세 나라의 언어 얘기를 잠깐 하죠. 우리는 흔히 덴마크어, 노르웨이어, 스웨덴어, 이런 말을 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 나라 사람들은 자기들 언어로 이웃나라 사람들과 얘기하면 다 의사가 통합니다. 그러니까 덴마크어, 노르웨이어, 스웨덴어라고 우리가 부르는 건 언어학적 기준으로는 한 언어의 방언들에 불과합니다. 특히 노르웨이어라는 건 덴마크어의 한 방언과 스웨덴 언어의 한 방언을, 이 두 개를 합쳐서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세 나라 사람들은 말이 자유롭게 통합니다. 스칸디나비아반도와 유틀란트반도에는 크게 네 개의 방언으로 이뤄진 한 언어가 존재할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일상적으로 노리웨이어, 스웨덴어, 덴마크어, 이렇게 말합니다. 그건 뭐냐, 언어와 방언을 가르는 언어학적 기준은 의사소통 가능성이지만, 정치가 개입하면 가끔 그 언어를 독립된 언어로 부르기도 한다, 그런 뜻입니다. 덴마크라는 나라, 스웨덴이라는 나라, 노르웨이라는 나라가 있으니까, 덴마크어, 스웨덴어, 노르웨이어라고 하는 겁니다. 사실 이런 용법은 정치적으로 오염된 것이죠.
  유고슬라비아란 나라가 냉전이 끝나고 나서 내전이 터진 뒤에 여러 나라로 분열됐습니다. 세르비아란 나라가 있고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몬테네그로, 슬로베니아, 그로아티아, 마케도니아, 이렇게 여섯 나라와 코소보, 보이보디나라는 자치주로 쪼개졌습니다. 아주 먼 얘기도 아닙니다. 여러분들한테는 먼 얘긴지 모르겠는데 저는 자랄 때 지리 시간에 유고슬라비아라는 나라에 대해서는 배웠지만, 세르비아나 크로아티아나 슬로베니아에 대해서 배운 적이 없습니다. 세계사 시간에 세르비아에 대해서 들어본 적은 있지만요. 아무튼 1991년엔가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가 독립을 선언하면서 유고슬라비아에 내전이 터졌습니다. 그 내전의 결과로 옛 유고슬라비아는 지금 여러 나라가 돼 있습니다. 그런데 유고슬라비아 시절엔 그 나라의 공용어를 세르보크로아티아어라고 불러씁니다.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에서 쓰는 언어라는 뜻이지요. 사실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크로아티아의 언어는 언어학적 기준으로 보면 방언적 차이만 있을 뿐 한 언어입니다. 그런데 내전의 결과로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가 서로 다른 나라가 된 지금, 우리는 세르보크로아티아어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세르비아에서는 세르비아어를 쓰고, 크로아티아에서는 크로아티아어를 쓴다,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도 정치적 기준이 언어학적 기준을 압도한 결과입니다. 이와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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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어는 언어인가,        

방언인가?                   


                                                                                                만약에 여러분들 누군가가, 강남구 분이라도 좋고 전라도 분이라도 좋고 충청도 분이라도 좋고 경기도 분이라도 좋고 어려서부터 배운 말을 사용하고, 제주도에서 자란 어떤 분이 어려서 배운 말, 그러니까 텔레비전이나 학교를 통해서 배운 말 말고 어려서 배운 말, 어머니한테서 배운 말 가지고 서로 얘기를 한다고 칩시다. 의사소통이 될까요? 불가능합니다. 제주도 사람 말과 육지에 사는 사람 말은 사실은 다른 언어입니다. 언어학적 기준으로는요. 물론 서로 굉장히 가까운 언어이긴 합니다. 그러니까 한반도에선 언어학적으로 두 개의 언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한국어와 제주어, 이 두 개 언어가 사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주라는 곳은 아주 예전부터 한반도에 부속돼 있었고 한반도와 한 나라, 한 정치공동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것을 현대적으로는 국민국가라고 합니다. 그런데 제주어는 한국어의 방언이 아니라 한국어와 다른 언어다, 누가 이런 주장을 했다고 해보세요. 제주 사람들에게나 육지 사람들에게나 이건 절대 좋은 뉴스가 아닙니다. 정치인들에게는 특히 그렇습니다. 제주에서 분리주의 운동이 일어날지도 모르죠. 그런 염려 때문에 제주어는 한국어의 방언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제주 사람들은 육지 사람과 '다른 언어'를 쓰는데도 우리는 그냥 '제주 방언'이란 표현을 씁니다. 제주 방언이란 말은 사실은 정치적으로 오염된 표현입니다. 아시겠죠? 그러니까 실제로 제주어는 한국어와 다른 언어인데, 만약에 제주도에서 쓰는 말을 곧이곧대로 다른 언어라고 하면 국민통합에 치명적 지장이 생깁니다. 골치 아픈 문제죠. 그래서 정치적 고려로 제주어는 한국어의 한 방언이다, 하고 넘어가는 겁니다. 물론 제주어가 한국어와 다른 언어이긴 하지만, 모든 자연언어 가운데 한국어와 가장 가까운 언어인 건 사실입니다.
  일본에도 그런 예가 있습니다. 일본열도를 내려가다 보면 오키나와라는 섬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류큐라고 불렸습니다. 제주도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류큐 사람들도 자기가 어려서 배운 언어를 사용하면 도쿄나 오사카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가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일본이란 국가 안에도 일본어라는 언어와 오키나와어라는 언어가 공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제주도의 경우와 똑같이, '아! 저건 일본어가 아니다' 그러면 오키나와 사람들은, '그래? 아, 잘됐다, 우리 독립할래', 그러겠지요. 사실 오키나와는 류큐라는 이름의 독립국이었습니다. 류큐가, 다시 말해 오키나와가 일본에 정치적으로 완전히 복속된 것은 19세기입니다. 그전에는 일본과 가까운 나라이기는 해지만, 일본의 일부라고 할 수는 없었습니다. 일본에 미군이 많이 주둔해 있는데 본토에는 거의 없고 대부분 오키나와에만 주둔해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실 오키나와 사람들은 본토 사람들에게 불만이 큽니다. 미군 관련 범죄도 다 오키나와에서 일어나고, 미군 주둔 지역이니 만약에 전쟁이 터지면 본토보다 오키나와가 적국의 공격 표적이 될 가능성이 크지요. 그런 상황에서 "오키나와어, 그건 일본어와 다른 언어야" 이런 소리가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특히 정치인이 그런 말 했다가는 정치 생명 끝장입니다.(웃음) 결국, 사실에 눈을 감고 "오키나와어는 일본어의 한 방언이야. 그건 다른 언어가 아니야"라고 얘기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언어와 방언의 차이는 이론적으로는 의사소통 가능성에 있지만 드물지 않게 정치적 고려가 개입한다, 이 얘깁니다. 제주어와 오키나와어가 한국어와 일본어의 방언으로 불리듯 말이죠. 거꾸로 앞서 말씀드렸듯 한 언어의 방언에 불과한데도, 서로 다른 언어로 불리기도 하고 말입니다. 스웨덴어, 노르웨이어, 덴마크어가 그렇고, 세르비아어와 크로아티아어가 그렇습니다.


/고종석의 문장에서 발췌


Posted by 세이브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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