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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은                             

왜 한글을 창제했는가?          


                                                                                    SNS 글쓰기와 한글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씀드릴 거리가 생각나네요. 제가 아까 위에서 말한 '최애캐'란 말 다 잇죠? '가장 사랑하는 캐릭터'라는 뜻입니다. 보통 한국 사람들이 최애캐 하면 떠올리는 사람이 누구일까요? 물론 젊은 사람들은 '소녀시대' 같은 걸그룹도 떠올릴 테고, 김연아 선수도 떠올릴 테고 그럴 테지만.


 수강생                     세종대왕이요.


  그렇죠. 세종대왕이죠? 한국인 대부분에게 '최애캐'는 세종대왕입니다. 이순신 장군을 떠올리는 분도 계시겠지만, 세종대왕을 꼽는 분이 더 많을 겁니다. 그리고 세종대왕의 업적 중 가장 큰 것은 한글 창제입니다.
  한글은 그야말로 한국어에 딱 맞춰진 글자입니다. 한국어를 표기하기 위해서 한글만큼 좋은 글자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 제자원리는 보면, 한글 창제자들의, 그러니까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의 음운학 지식이 20세기 음운학자들 못지핞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예컨대 'ㄱ'이라는 파열음에 유기성('ㅎ' 소리)이 더해지면 한 획을 더해 'ㅋ'을 만들고, 유기성이 완전히 사라지면 글자를 반복해 'ㄲ'을 만들고. 'ㄷ' 'ㅌ' 'ㄸ'이나, 'ㅂ' 'ㅍ' 'ㅃ' 다 마찬가지입니다. 이 소리들은 유기성의 정도만 다를 뿐, 소리를 내는 곳이 똑같습니다. 로마문자에선 이런 체계성을 전혀 볼 수 없어요. 예컨대 'G'와 'K' 'D'와 'T' 사이에는 아무런 형태적 유사성이 없습니다. 소리 나는 곳이 같은데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한글을 로마문자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자질문자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음소보다 더 작은 단위인 자질, 예컨대 유기성이라는 자질까지 고려해 그것을 글자 모양에 반영했으니까요.
  그렇지만 한편으로 보면 한글은 로마문자나 키릴문자 같은 음소문자보다 덜 발달한 문자체계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멀쩡하게 음소문자를 만들어놓고, 이걸 음절 단위로 네모나게 모아서 쓰잖습니까? 한자나 가나처럼 말입니다. 문자 발달사에서 음절문자는 음소문자보다 덜 발달된 문자체계입니다. 한글을 음절 단위로 모아쓰게 된 건 한자의 영향이었겠지요.
  수강생 한 분이 한글 창제를 두고 애민정신을 이야기했습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것은 애민정신 대문이었을까요? 물론 세종대왕에겐 애민정신이 있었겠죠.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백성을 사랑했을 겁니다. 그렇지만 세종이 정말 백성들을 사랑해서 한글을 만들었겠어요? 봉건시대 군주가요? 그렇게 백성을 사랑했으면 한글을 만들기 전에 일단 노비부터 해방시켰어야지요. 오직 백성을 사랑해서 한글을 창제했다는 것은 그저 공식적으로 유통되는 거짓말일 뿐입니다.
  그러면 세종은 왜 한글을 창조했을까요? 역사학자들이나 언어학자들은 크게 두 가지 이유를 꼽습니다. 첫 번째는 백성세계의 의식 성장입니다. 이성계가 고려를 무너뜨리고 새 나라를 세웠는데 그사이에 백성세계의 의식도 성장한 것입니다. 이 백성세계를 통제할 필요가 있어진 겁니다. 통제를 하려면 통제 대상이 뭘 좀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완전히 까막눈인 사람들은 통제도 못합니다. 말이 전달돼야 통제가 되는 겁니다. 말하자면 백성세계의 의식 성장에 맞서서 전제군주가 '아, 이 백성들 안 되겠네. 자꾸 기어오르는데 좀 다잡아야겠다', 이런 게 아마 첫 번째 이유였을 겁니다. 그래서 훈민정음을 만들자마자 <용비어천가>라는 걸 씁니다. 세종의 조상들이 모두 완전히 신이에요. 날아다니기도 하고 호랑이도 때려잡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용비어천가>는 일종의 건국신화입니다. 조선왕조의 건국신화. 그런데 이걸 애민 운운하면 안 됩니다. 훈민정음으로 기록된 초창기 문헌인 <용비어천가>에서 세종이 왜 훈민정음을 만들었는지 우리는 그 의도를 알 수 있습니다. 백성들을 어여삐 여겨서, 불쌍히 여겨서 만들었다고 말은 하지만, 물론 어여삐 여긴 마음도 있었겠지요. 그렇지만 그건 부차적 이유였겠죠.
  그럼 두 번째 이유는 뭘까요? 한글의 원래 이름은 훈민정음입니다. 훈민정음이 무슨 뜻이죠. 이걸 문장이라고 생각하고 해석한다면 '바른 소리를 백성들에게 가르친다'가 되겠지만, 명사구로 생각한다면 '백성들을 가르치는 올바른 소리'라고 해석하는 것이 옳을 겁니다. 그러면 이 '바른 소리'라는 건 뭘까요? 바로 당대의 중국어 발음입니다. 삼국시대 이후 한자가 수입되면서, 수많은 중국어 단어가 한자어의 형식으로 차용됐습니다. 그렇지만 그 단어들은 한국어 음운체계에 동화돼 세종 시절에는 중국어 발음과 너무 달라져버렸어요. 지금도 그렇죠. 天을 한국인들은 '천'이라고 읽지만, 중국인들은 '티엔' 비슷하게 읽습니다. 세종이 한글을 반포하며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라고 말했죠? 세종은 이걸 참을 수 없었던 겁니다. 그래서 그때까지의 한국어 한자 발음을 되도록 중국어 원음에 가깝게 만들기 위해 훈민정음을 만든 것입니다.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지를 알려줘야 하니까 소리글자를 만들 수밖에 없었고요. 그러니까 '훈민정음'에서 '정음'이라는 건 대체로 중국인들의 발음에 가까운 소리를 말합니다. 그 소리를 백성에게 가르치기 위해 훈민정음을 만든 겁니다. 그 당시 한자 옆에 표기된 훈민정음을 보면 실제로 15세기에는 그 한자를 그렇게 읽지 않았는데도 되도록 당대 중국에 발음에 가깝게 토를 단 게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글 창제의 동기는 애민정신이라기보다, 뭐 기본적으로 애민정신이 있었다고 합니다, 다들 그렇게 말하니까.(웃음) 애민 정신이 있었겠죠.(웃음) 그렇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백성세계의 의식이 성장해 천한 것들이 대들려고 하니까 이거 중심 좀 잡아야겠네, 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당시 사람들의 한자음이 중국인들의 한자음과 너무 달라져 있으니까, 완전히 똑같게는 못할지라도 중국어 발음과 좀 가깝게 가르쳐보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고종석의 문장에서 발췌




Posted by 세이브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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