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출권거래제, 공무원들의 잔칫상 되서는 안돼
온실가스 배출권거래법이 지난 2일 국회를 통과함으로써 2015년부터 관련 제도가 시행된다. '온실가스를 배출할 권리'는 말하자면 에너지를 쓸 수 있는 권리다. 에너지 없이 공장을 돌릴 수는 없다. 따라서 온실가스 배출권은 경제활동 면허장이라고 할 수 있다. 열심히 공장을 가동해 일자리를 만들고 국부(國富)를 늘리는 건 기업의 사명이다. 그걸 허가받고 하라는 것이니 기업들은 황당하게 느낄 만하다.
배출권거래제를 반길 세 직군(職群)이 있는데 경제학자, 공무원, 변호사다. 경제학자들은 강의실 칠판에서 그리던 그림을 경제 현장에서 구현하게 됐으니 가슴이 설렌다. 원리는 이렇다. 기업 A는 온실가스를 연간 100만t, B는 50만t을 배출한다고 치자. 정부가 A의 할당량은 90만t, B는 40만t으로 제한했다. A·B 모두 10만t씩 줄여야 한다. 그런데 A가 10만t을 줄이는 데는 10억원, B는 20억원 든다. 이 경우 A와 B가 각각 10만t씩 줄이기보다 A가 20만t을 줄인 뒤 삭감 실적 가운데 10만t을 B에게 15억원에 판다. 그러면 A·B 모두 5억원씩 이득이다. 제도만 잘 설계해놓으면 시장이 이런 걸 다 알아서 조절해 경제 전체로 보면 적은 비용을 들여 목표를 달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어떤 기업에 얼마의 배출권을 할당하느냐는 것이다. 기본 원칙은 '과거 배출량 기준'이다. 하지만 에너지를 마구 써온 A회사엔 할당량을 90만t이나 주면서 진작부터 온실가스 배출량을 열심히 줄여온 B회사엔 40만t만 주는 것이 공정하느냐는 의문이 생긴다. 낙후한 공정을 그냥 유지해온 비양심적인 기업이 할당량을 많이 받은 후 그걸 모범 기업에 팔아 배를 불리는 결과가 될 수 있다. 배출권거래법은 이런 일을 막기 위해 정부가 심사하는 절차를 두고 있다.
경영 부실로 생산 활동이 둔화돼 온실가스 배출량이 줄어든 기업도 있다. 이런 기업이 남는 배출권을 팔아 이득을 보면 그건 무능력이 상(賞)을 받는 게 된다. 사업을 확장하거나 생산 품목을 바꿔 배출량이 증가한 기업도 있을 것이다. 기업은 그때그때 사정 변경을 증명하는 절차를 거쳐 배출 할당량을 바꿔야 한다. 이 과정 하나하나가 복잡하고 불명확하고 논란의 소지가 있다. 판정자인 공무원의 재량권은 커진다.
태양광 업체가 물건을 열심히 팔면 기업 자체의 배출량은 늘겠지만 국가 전체론 온실가스 배출량이 줄어든다. 이건 어떻게 봐야 하나? 불경기로 공장 가동률이 떨어지는 바람에 남아돌게 된 배출권을 자산으로 장부에 올려 재무 구조를 왜곡하는 일은 없을까? 가격이 폭락한 배출권을 사재기했다가 경기가 살아나면 팔아치우는 머니게임이 벌어질 수도 있다.
배출권거래제는 단순명쾌한 제도가 아니다. 그래서 유보 조항, 예외 조항, 보강 조항을 덧대고 덧댈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제도가 난해해지고 곳곳에 구멍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 공무원은 권한이 커지고, 변호사에겐 로비 공간이 생긴다.
배출권거래제의 주관 부처를 지식경제부로 할 것인가 환경부로 할 것인가를 두고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규제의 신천지(新天地)가 열렸으니 그 땅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욕심끼리 부딪친다. 온난화를 막자는 지구적 과제가 생겼으니 규제가 생기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그 규제가 공무원들 밥상 한번 거나하게 차려주는 식이 돼선 안 된다. 주관 부처 결정 땐 기업과 공무원의 유착 가능성을 어떻게 줄일 것인가를 주요 고려 사항으로 삼아야 한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5/18/201205180268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