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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헌법재판소가 아시아 법치주의를 이끈다

세이브12 2012. 5. 20. 09:24

리비아·시리아같이 독재체제를 종식시키는 투쟁에서 이집트·바레인 등 헌법개정의 절차적·국민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에 이르기까지 '아랍의 봄'은 강한 충격의 소리를 내며 연착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얼마 전 열사의 중동 현장에 세계 법률가들이 모여 아랍의 법치주의와 자유에 대해 논의하는 장에서 나는 줄곧 한국의 사례에서 배울 점이 많다는 것을 강조했다. 1987년 새 헌법을 만들어간 과정과 헌법재판소를 설치해 민주화와 입헌국가의 실현에서 연착륙을 한 한국의 경험은 세계적으로 공유할 만하다.

한국의 민주화가 강한 파열음을 내지 않고 연착륙한 데는 헌법재판소가 큰 역할을 했다. 인권을 침해하는 입법과 불법적인 공권력에 대해 '위헌(違憲)'을 선언하며 권위주의적 요소들을 척결해내고, 정치적 충돌과 권력남용을 헌법의 틀 속에서 평화적으로 정리해간 것은 입헌주의 실현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가진 헌법재판소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간 한국 헌법재판소는 강력한 의지와 정치한 이론을 바탕으로 켜켜이 쌓인 불법들에 대해 많은 위헌 선언을 함으로써 아시아 입헌주의와 민주주의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세계 정치시장에서 한국이 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수출상품이 헌법재판 제도가 되었고, 그 품질도 세계 시장에서 검증됐다. 그 결과 동유럽의 체제전환국이나 아시아의 후발국가에서 한국의 헌법재판 제도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수용하기 시작했다. 이제 한국은 아시아 헌법재판의 종주국으로서 지위를 확실히 하고, 이웃 나라와 경험을 공유하며 필요한 지원도 해나가고 있다.

한국 헌법재판소에 대한 이런 세계적인 평가에 힘입어 2008년에 한국에서 세계헌법재판소장 회의가 개최됐고, 20일부터 아시아헌법재판소연합 창립총회가 서울에서 열리게 됐다. 아시아헌법재판소연합은 2005년 아시아헌법재판관회의에서 그 필요성이 논의된 후 여러 차례의 준비회의를 거쳐 출범하게 됐다. 아시아헌재연합은 의장국인 한국을 비롯해 태국·몽골·필리핀·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우즈베키스탄·러시아·타지키스탄·터키 등 10개국이 가입한 상설 지역협의체로 유럽헌법재판소회의나 중남미헌법재판기관회의처럼 아시아의 역사와 문화, 삶의 가치에 맞는 헌법재판 제도를 만들어 가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으로 전망된다.

오늘날 입헌주의와 민주주의는 글로벌한 문제이기에 헌법재판 역시 글로벌한 수준에서 논의되고 있다. 한 나라가 고유성을 내세워 자기 입장을 고집하는 것이 통용될 수 없으며, 각 나라의 경험이 공개되고 공유되면서 발전하고 있다. 이번 회의에 인도·카자흐스탄·싱가포르 등 10개국의 옵서버와 부탄·중국·일본·미얀마 등 10개국의 게스트가 참가하는 것도 헌법재판이 일국(一國) 단위가 아니라 글로벌한 수준에서 진행됨을 말해준다.

한국 헌법재판소는 저발전 국가의 민주화와 입헌주의의 성공에 적극 기여해야 할 책무가 있다. 한국의 민주화 성공은 전 세계의 민주화와 입헌국가 실현에 기여할 때 더 큰 의미를 가진다. 헌법재판연구원을 통해 후발국가의 헌법재판 요원을 교육하고 경험을 공유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아시아적 입헌주의의 선도적인 의제를 개발해 아시아 국가들의 입헌국가 확립에 기여하며, 유럽과 중남미 헌법재판 참여자들에게도 국제적인 논의의 장을 마련해 명실공히 한국이 세계 법치주의 및 입헌주의의 메카가 되는 전망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5/18/201205180268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