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120507

세이브12 2012. 5. 7. 23:59

조선시대 말기의 이경주라는 문필가가 일기를 썼다. 그것도 13년간 매일매일 빠짐없이. 그것이 흠영이라는 서적인데, 참으로 나를 부끄럽게 하는 일이다.

더욱 부끄러운 일은 앞으로 시작하는 이 일기가 매일을 보장할 수가 없어서 그의 영향을 받았다고 밝히기가 부끄럽다는 사실이다. 부끄럽다.

 

 

1. 새로운 한주가 밝았다.

 

2. 전날 밤 아홉시 께에 잤는데 아홉 시간은 잔 느낌이다. 덕분에 전전날 먹은 술은 다 깼다. 그래도 시간이 아깝다.

 

3. <통합영어 (강독)> <선비의 정신세계> 수업을 듣고 왔다. <선비의 정신세계>는 위에 적었듯이 흠영이라는 일기를 발견한 것이 큰 수확이었다. 강독 교수님은 언제나 자기만의 시각으로 영문을 녹여내어 전해준다. 그 시각이 바른 것은 아니지만 넓고 명확해서 내가 즐기는 수업중에 하나다. 내 실력으론 어려운 텍스트들이기에, 웃으면서 읽도록 해주시는 교수님이 조금 고맙다.

 

4. 이상하게도 점심 시간에 잤다. 아홉 시간을 잤는데 그렇게 졸립다니, 아마 위가 많이 약해진 모양이다. 점심으로는 양식을 먹었는데, 우리 학생식당은 항상 양식과 한식의 두가지 메뉴를 점심에 내놓는다. 둘 다 3천원 남짓으로 학생이 먹을 수 있는 가장 싼 점심중에 하나일 것이다. 학생식당의 석식은 메뉴가 한가지다. 아직 먹어본 적 없다.

 

5. 오는 길에 D마트라고 하는 근방에서 가장 큰 마켓을 들렸다. 여기보다 큰 곳을 찾으려면 홈플러스까지 나가야 할 거다. 큰 곳이라서 그런지 제법 활기가 있었다. 주변에 아파트 단지가 잔뜩 들어서있어서일 것이다. 순두부를 하나 사서 들어왔다. 누나가 순두부로 찌개를 끓인다더니 끓이지 않았다. 유통기한이 그리 길지는 않을 것이다.

 

6. 집에 오니 누나가 배변판을 큰 것으로 교체했다. 크다고 해도 시트보다는 작아서, 시트 끝을 조금 접어서 넣어야 한다. 자주 갈기가 귀찮다고 해서 큰 것으로 바꿨는데, 여름이면 사실 자주 가는 것이 좋아서 후회하고 있다고 한다.

 

7. 밥이 남은게 없어서 누나가 배달을 시키자고 했다. 내가 보기에 우리집은 너무 자주 외식한다. 사실 요리하는 것도 그리 싼 것은 아니지만, 외식 빈도를 반으로 줄이면 한달에 십만원 이상은 아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냥 시키는대로 묻어가서 먹었다. 나는 간짜장, 누나는 볶음밥을 먹었다. 간짜장은 조금 탄 맛이 났다.

 

8. <무의도 기행>을 읽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으로 비판했다. 정말 잘 짜여진 비극이다. 교과서적이다.

 

9. 걸레를 이틀 전에 빤 것을 떠올렸다. 세탁기를 열어보니 그대로 있었다. 바닥에 그냥 말리려고 했는데, 그러면 강아지가 거기다 변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빨랫대에 널었다. 걸레가 그다지 깨끗해진 기분이 들지 않는다. 누나가 옥시크린을 넣어서 물에 불려두어야 때가 빠진다고 했다. 유념해야겠다.

 

10. 북새통에서 8주년 할인행사를 시작한다고 한다. 이번 주말에 가봐야겠다. 미리 구입목록을 뽑기로 한다.